세거지

세거지(世居地) - 집성촌(集姓村)

 

나주정씨는 원래 토성으로 압해(押海)를 근거지로 당지의 호족(豪族)으로 살았다. 시조 정윤종 이래 제6세 공일(公逸)에 이르기까지는 계속 압해에서 살았고, 분묘도 다 그곳에 있을 터이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다 실전된 상태이다. 그 후 제7세 원보(元甫) 때에 이르러 검교호군(檢校護軍)이라는 실무가 없는 무관벼슬을 얻은 것을 계기로, 비로소 개경(開京)으로 올라와 개경에서 가까운 덕수(德水)로 옮겨 살았다. 거기서 자녀를 낳고 살았지만 지금은 분묘조차 찾을 수가 없다. 그 후 9세조 안경(安景) 때에 와서 배천(白川)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때부터 제2의 세거지가 형성되고 분묘도 제대로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나주정씨는 압해도에서 처음으로 출사(出仕)를 꿈꾸면서 상경하게 되고, 또한 그 후 점진적으로 사족화(士族化)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조선조로 들어와서는 그 꿈을 상당히 이루어 드디어는 문중에서 이상(貳相) 서열의 고위 사환을 배출함과 동시에 한양(漢陽)을 중심으로 경기지방에서 세거지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세거지는 세장지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사는 곳과 죽어서 묻히는 곳은 항상 대부분 같은 장소거나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수 백 년을 거쳐 살아오는 동안, 자손들의 번창과 더불어 자연적으로 전국 각지로 분거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서울을 비롯하여 배천(白川)ㆍ고양(高陽)ㆍ용인(龍仁)ㆍ분당(盆塘)ㆍ김포(金浦)ㆍ서산(瑞山)ㆍ서천(舒川)ㆍ공주(公州)ㆍ원주(原州)ㆍ영주(榮州)ㆍ예천(醴泉)ㆍ의성(義城)ㆍ영천(永川)ㆍ대구(大邱)ㆍ진주(晉州)ㆍ나주(羅州)ㆍ무안(務安) 등등 전국 각지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